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트르 차이콥스키 (문단 편집) === 중기 === [[1874년]]에는 차이콥스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1번(차이콥스키)|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를 작곡했다. 당초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연주를 부탁했으나 니콜라이는 이 작품이 난해하고 연주 불가능한 곡이라며 거절했다. 결국 벤자민 존슨 랭의 지휘로 [[한스 폰 뷜로]]가 보스턴(당시 보스턴 뮤직홀, 현 보스턴 오르페움 극장)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초연하였다. 관객의 반응은 좋았으나 비평가들의 평은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평가와 썩 다르지 않았다. 이후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서 1878년까지 근무하며 작곡활동을 병행하다가 [[러시아]] 철도왕의 미망인 나데즈다 폰 메크(Надежда Фон Мекк, [[1831년]] ~ [[1894년]]) 부인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작곡에만 전념하게 된다. 폰 메크 부인은 약 15년동안 차이콥스키를 후원해 주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실제로 본 것은 오직 2~3번뿐이라고 한다. 이는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콥스키를 후원하기로 했을 때 서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또한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과 약 15년간(1877-1890) 1,2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플라토닉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0년]]에 폰 메크 부인은 파산을 이유로 더 이상 차이콥스키를 후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일설에 따르면 폰 메크 부인의 재정적 불안은 작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며, 실제로는 차이콥스키와의 관계를 중단하라는 폰 메크 부인의 가족들의 압박과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후원을 중단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한다. 폰 메크 부인의 일방적인 결별 선언에 차이콥스키는 극심한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차이콥스키가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폰 메크 부인은 더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으니 사실상 둘의 관계는 끝난 것이다. 이 때문에 차이콥스키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폰 메크 부인에 대해 강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임종 직전에도 폰 메크 부인의 이름을 부르며 '저주받을 여자'라고 외쳤다고 한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과의 연애나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는 9살이나 어리고 음악원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열성적인 구애에 시달리다가 밀류코바가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탓에 결국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결혼인 탓에 결혼 생활은 행복할 리가 없었고, 차이콥스키가 석달을 못 버티고 도망쳐 버리면서 결혼생활은 파탄으로 끝났다. 말이 좋아서 파탄이지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난 것도 아니었다. 차이콥스키는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이혼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아내의 성관계 요구에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류코바는 결혼을 지속할 것을 원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아내가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폭로할 것이라고 두려워한 차이콥스키가 이혼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 복잡한 결혼관계는 차이콥스키가 숨지면서 끝났다. 이 결혼 사건은 그의 음악의 분위기까지 바꿀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결국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그는 신경쇠약으로 이어진 후 유럽으로 도피성 요양여행을 떠났고, [[이탈리아]]에 이르러서야 겨우 심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때 작곡한 곡이 현악 6중주 op.70 '피렌체의 추억'인데, 매우 격정적이고 우울한 곡이다. 제목을 보면 피렌체를 가서 본 아름다운 것을 떠올리고 작곡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반대로 복잡한 결혼을 뒤로 하고 이탈리아에 도피성 여행을 간 차이콥스키의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이 표현된 곡이다. [[켄 러셀]]의 <뮤직 러버스>나 <[[레토(영화)|레토]]>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이 문제 많았던 결혼 생활을 다루는 영화다. [* 후자는 안토니나 밀류코바 입장에서 다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